영원하진 못해도 언제나
일상을 세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오랜만에 글을 쓴다. 이 연재물의 새 글을 발행하지 않은지 꽤 되었지만 잊은 것은 아니었다. 마음속 한편엔 연재에 대한 부채감이 늘 있다. 기분이 성가신 날에는 거슬릴 정도로 말이다. 그 어둔 그림자는 무겁게 내 몸을 눌러 무기력에 빠지게 하기도 한다. 그렇게 한참을 눌려 지냈다. 그리고 오늘 모종의 이유로 다시 일상을 쌓고 싶어진 마음에 먼저 이 연재 글의 첫 발행물을 차근차근 읽었다. 그날의 나는 비장해 보였다. 되짚어보면 외롭기도 했다. 그렇지만 외롭고 외롭기에 더 비장할 수 있었던 것만 같다. 사랑하는 부모님에게서 언제나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진 않았지만 기대했었다. 연약하고 홀로 선 사람에게 꿈꿀 기회조차 허락되지 않는 건 아니니까, 그럴 수 있잖아. 많은 시간을 이렇게 나를 다독이면서도 매번 슬펐다.
지난달, 이모에게 하고 싶지 않던 커밍아웃을 했다. 난 그날의 일을 '강제 커밍아웃' 혹은 '셀프 아웃팅'으로 칭한다. 사는 동안 수많은 커밍아웃을 했었던 나지만, 당사자인 내가 원치 않았고 준비되지 않은 커밍아웃이었기 때문에 그렇다. 그 시간, 이모와의 대화 중 웃음으로 넘길만한 일은 딱히 없었고 당시의 난 황당한 채로 울며 괴로워했지만 몇 주 후 만난 엄마와 언니에겐 대충 웃으며 얼버무렸다. 이모가 알게 되었다고 전할 때 나에게 안부를 묻는 가족은 없었다.
"그 사람이 오래도록, 영원히 네 곁에 있어줄 것 같니?" 쏘아붙이며 묻던 이모가 생각난다. 참 너무하다고 생각했다. 당신을 포함한 그 누구도 언제나 내 곁에 있지 않았으면서, 결국 남는 건 나의 혈연, 원가족뿐이랬다. 아직도 가끔씩, 자주 그 말이 떠오르고 헛웃음 짓는다.
지난 주말은 애인과 꽉 채워 보냈다. 토요일은 둘이 나가서 오랜만에 데이트를 즐겼고 일요일 점심엔 임신 중이신 레즈비언 커플과 만나 식사와 담소를, 마찬가지로 저녁엔 작년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 우릴 인터뷰하신 방송국 기자님과 식사하고 이야기 나눴다. 그들은 우리를 결혼을 앞둔 여느 예비부부와 다르지 않게 보아주었고 난 그 즐거움에 빠져 이번 한 주를 보냈지만... 결혼이라는 제도 자체에 회의감을 느낀다며, 게다가 법적인 배경도 없는 동성 결혼의 의미를 더욱 알 수 없다는 어머니의 말은 여전히 서운하다.
돌아올 봄, 난 결혼을 앞두고 건축학도로 돌아가기로 했다. 한동안 경제 주체는 애인 한 명일 것이 서로에게 부담이 되겠지만, 어쩌면 나의 학교 생활이 우리 관계의 큰 장애물이 되겠지만, 나의 미래와 우리 가정의 미래를 생각했고 애인은 날 더 믿어주기로 약속해 주었다. 영원하진 못해도 언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