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 당신, 부디 그만두지 않기를.
안녕하십니까. 해경입니다. 당신들이 안녕하길 바라며 글을 시작하려 합니다.
*다소 어두운 이야기가 포함 되어 있습니다. 중단을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는 분들께 어느 날의 숨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울증과 ADHD을 가진 삶, 그리고 중단과 생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당장에 무엇이든 써내려가고 싶은 충동이 강하게 든 탓은 제가 ADHD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고, 그 무엇이 이 글이 된 이유는 제가 우울증을 앓고 있기 때문이겠습니다.
정신병이 왜 정신병인지 아십니까? 정신의 병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간단한 이치를 여즉도 온전히 인정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피를 흘린다거나 통증이 있는 병과는 달리 그쳐 스치듯 마주치면 아무도 모를 병이니까요. 무한 경쟁의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것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순간들엔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습니다. 정신질환도 병이라고, 약을 먹고 쉬는 게 당연하다는 걸 주장하는 건 할 수 있는 것들에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화살을 자신에게로 돌려 조용히 자책하는 것은 할 수 있는 것에 포함되었던 걸까요.
전 한 번도 제 병이 완치될 거라 생각한 적 없습니다. 터널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자의 어두운 생각일지도 모릅니다. 심장이나 폐 같은 장기들이 표준치의 기능을 하기 어렵게 태어난 이들처럼, 저는 제 영혼이 그리 태어났다고 생각했습니다. 대신 더 많은 것을 느끼고 볼 순 있지요.
어렸을 적 연극을 본 적이 있습니다. 달에서 태어난 이들에 관한 극이었습니다. 그들은 달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잊은 채 지구로 오게 되었습니다. 지구는 달과는 달리 자전 속도가 비교적 빨랐고, 때문에 늘 어지러운 채로 옅은 고통을 느끼며 살아갑니다. 그 속에서 서로를 알아보며 결국은 달이 자신들의 고향임을 깨닫지요. 후로는 동향인들에게 위로를 전하려 동향인들을 찾으며 살아갑니다. 그 연극을 본 뒤로 저는 어렴풋이 깨달았습니다. 매번 새벽달에 홀리듯 시선이 빼앗긴 이유는 어쩌면 그곳이 고향이기 때문이었을 거라고. 어쩌면 달에선, 지구보다 조금 더 느리고 더 다양한 사람들이 많은 것을 감각할 수 있게 태어나는 곳 아닐까요. 그 연극은 제가 저를 탓하지 않을 이유를 처음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우울증에 대해 먼저 얘기해 보겠습니다. 우울증 진단을 받고 약 복용을 시작한 건 중학교 3학년 무렵입니다. 열일곱 열여덟 즈음엔 자해와 입원을 반복했었습니다. 자세한 서술은 줄이겠습니다.
우울증은 저로 하여금 마침내는 중단을 떠올리는 사고회로를 갖게 합니다. 청결을 유지하는 것이 어려울 때가 자주 있습니다. 약을 먹어야 나아질 수 있지만 약을 받으러 일어나지 못합니다. 햇볕을 쬐고 규칙적인 수면 습관을 들여야 하지만 연초를 피우러 잠깐 나가는 것 조차 힘겹습니다. 옳지 않은 방법으로 기분을 해소할 수 밖에 없는 순간들이 반복되며 늪에 빠집니다. 때때로 방은 옷으로 어지려워지고 싱크대는 그릇으로 가득해집니다. 특별한 사건 없이 오열합니다. 열 다섯 시간을 내리 자거나 두 시간을 채 못 잡니다.
다음은 ADHD 이야기입니다. 병원에 간 건 초등학교 6학년 무렵이었습니다. 친모께서 저를 데려가셨어요. 사연은 이러합니다. 플루트를 배우고 싶었던 저는 방과 후 프로그램을 등록했습니다. 아직도 기억합니다, 매주 월요일이 레슨일이었어요. 여러분, 플루트를 배우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아시나요? 바로 플루트입니다. 그런데 전 매주 플루트를 집에 놓고 등교했습니다. 배우고 싶다 떼를 써 등록한 수업에서 가장 중요한 걸 매번 까먹어 수업을 못했다니요. 교재와 필기구를 일부러 가져오지 않는 꾀처럼 보이기엔 매일 늦은 밤이 되기 전까지 뱀이 나올 정도로 플루트를 불어댔었습니다. 제가 플루트 수업에 플루트를 가져오지 못한 이유는 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겁니다. 검사 후 저는 ADHD 진단을 받았습니다. 들어보셨을 수도 있습니다, '조용한 ADHD'. 접니다.
ADHD는 저로 하여금 시간과 소비 감각을 마비시키며 방금 하려 했던 일을 새까맣게 잊게 만듭니다. 타인과 같이 걸을 때엔 일자로 걷기를 어려워 합니다. 오후 네 시가 넘어서 놀이 공원을 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면 당장 표를 알아보는 것 외의 다른 일은 하기 어렵습니다. 참을 수 없다는 감각이 나를 지배하면 가위를 들어 머리칼을 자유롭게 잘라내기도 합니다. 일들을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루고는 제법 잘 끝내기도, 모든 것을 해치울 기세로 시작한 일들을 끝내지 못하기도 합니다. 많은 것을 감각할 수 있어 즐겁다가도 감각들이 마비되었으면 하고 바랄 때가 있습니다. 한 가지에 집중해 부르는 소리를 듣기 어렵다가도 주위의 모든 소리들을 들을 수 있습니다.
이렇듯 무한 경쟁의 현대 사회와 빨리 빨리의 한국 사회에서 우울증과 ADHD로 살아가는 것은 실로 고된 일임에 틀림 없습니다. 하지만 그 많은 고충들을 지나쳐 살만한 점을 꼽는다면 다채로움 아닐까요. 예민함과 우울함은 세심함과 공감이 되어 예술에 혼을 더하고 산만함은 감각이 되어 주위의 것들을 마음껏 느낍니다. ADHD 약을 먹으며 든 많은 생각들 중 하나는 '재미 없다' 였습니다. 시야가 좁아지고 무던해진 기분이었거든요.
삶의 지속에 대해서도 줄곧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아마 느끼셨을 수도 있습니다. 이 글에서 제가 줄곧 특정 단어를 중단이라고 표현한 것을요. 발음엔 힘이 있습니다. 에둘러 적은 이유이지요. 덜 떠올리길 바라는 마음에서 였습니다. 의도가 전해지길 바라며 하고 싶은 말을 적어 보겠습니다. 요즈음엔 매일 중단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모든 것이 안개가 낀 듯 분간하기 어려웠지만 분명한 건 살아내야 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두 번 다시 그 트라우마를 안겨주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의 소식을 듣고 절망할 사람들이 있고 상처가 남을 사람들이 있습니다. 슬프게도 내 목숨이 중한 줄은 모르겠으나 그들의 마음이 중한 줄은 뼈져리게 압니다. 내가 사랑하는 이들에게 아픔을 남기는 것은, 제게 있어서는 벅찬 날들을 살아감보다 더 힘든 일입니다. 날 위해 살지 못한다면 그들을 위해서라도 살아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보면 언젠간 날 위해 살 수 있는 날들이 오지 않을까, 하고 막연히 상상하면서 말이지요. 그리고 덧붙여 아주 솔직해지자면, 계속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조금은 남아 있습니다.
저는 자주 스스로를 사랑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이끌립니다. 그리고 결국 그들을 사랑합니다. 어쩌면 그건 자신을 사랑할 수 없는 나를 사랑하고 싶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저는 저를 사랑하고 싶은 걸지도 모릅니다.
이것들을 이유로 삼아 저는 살아가겠습니다. 약을 먹고, 잠을 자고, 밥을 먹고. 침대에 빨려들어가 있어도 손을 잡고 병원을 함께 가주는 이들과 함께, 밥은 먹었냐며 몇 끼고 대접해 주는 이들과 함께, 그만하지 말라고 울며 내게 안기는 이와 함께, 걱정 어린 잔소리로 사랑을 표현하는 이들과 함께, 항상 고운 말을 남겨주는 이들과 함께, 집 앞에 찾아와 포도를 문고리에 걸어두는 이와 함께, 늘 품을 내어 포옹해주는 이들과 함께. 그 모든 이들과 함께 살아가겠습니다.
그러니 당신, 부디 그만두지 않기를.
세미콜론으로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