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어있는 당사자의 언어
지난 10월, 친애하는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을 누구보다 빠르게 전하던 나의 애인은 소문난 독서광 임에도 “한강” 작가의 글은 읽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와 달리 소설책과는 거리가 먼 내가 유일하게 사랑하는 소설가는 “한강” 작가였다. 애인은 내게 작가의 책 중 가진 것이 있냐고 물었고 난 두 권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다음 날부터 우리 집 현관 앞으로 책 택배가 무겁게 많이도 왔다. 애인은 택배를 주워들어 귀가하는 날 보며 히죽 웃었다. 이미 내가 준 첫 책 <소년이 온다>를 완독한 후였다.
그 다음 날 애인은 두 번째 책, <채식주의자>를 펼쳤다. 그 책 또한 내가 가지고 있던, 팔 년 전 어느 비 오는 날 안고 뛰어 겉 표지가 울고 있는, “한강”의 소설이었다.
그 표지가 울게 된 날의 난 등교를 거부하는 그저 그런 학생으로서 어머니가 잡아둔 심리 상담 프로그램을 갔었다. 상담사와 인사를 하고 나오는 길에 비가 왔다. 난 우산이 없었고 가진 건 <채식주의자> 한 권이었다. 나처럼 우산이 없는 이들은 그나마 가진 것들로 머리 위를 덮거나 불 켜진 가게들 처마 밑에서 하늘을 바라봤다. 난 가진 책만 빤히 봤다. 뒤이어 나온 상담사가 내게 우산이 있는지 물었다. 난 데리러 올 사람이 있다고 답했고 상담사는 안도의 미소를 띄며 주차된 본인의 자동차를 향해 달려갔다. 거짓말이었다. 우산이 없다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아서, 그렇다고 우산이 있다고 하고 싶지도 않아서- 나는 거짓말을 했다. 동시에 나는 성범죄의 피해자였다. 내가 해를 입었다고 말하고 싶지 않아서, 그렇다고 아무 일 없다는 듯 그 속을 지나갈 수도 없어서- 다른 일이 있다며 거짓말을 했다. 갖고 있는 유일한 책을 껴안고 달렸다. 거세지는 빗물은 내 품을 파고 들어 책도 울게 만들었다.
애인이 그 책을 읽고 있었다. 그 앞에서 나는 자주 물었다.
“어디까지 읽었어요? 내용은 어때요?”
“표현이 역하다는 후기를 많이 봤는데 난 아직 모르겠어.”
이내 애인은 끝을 읽었다며 책을 덮었다. 나는 오래 같은 자세 유지로 몸이 찌뿌둥하다는 애인과 산책을 나갔다.
“주인공이 채식을 하게 된 이유나 그 시점이 나오지 않아서 이상했어.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뭘까?”
“너무 오래 전에 읽어서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난 그래서 더 와닿았던 것 같아요. 주인공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만 전개되잖아요. 주인공이 큰 실수나 잘못을 하고 있는 게 아닌데, 그보다 폭력을 가하는 사람들을 이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요… 주인공이 채식을 시작한 이유는 별로 중요하지 않고 앞으로도 중요하지 않을 것 같아요. 통념을 거스르는 사람들은 구구절절 늘 자신을 해명해야하고 상대가 듣기 좋은 말을 골라 내야 받아들여지는데- 반대 편의 사람들은 자신의 주장을 타인에게 강요해도 정당화되는 그 상황이 중요한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애인은 기울어있던 고개를 끄덕이며 그럴 수도 있겠다고 했다. 나는 그동안 해명에 해명을, 설득에 설득을 더해왔던 내 시간들을 떠올렸다. 누가 어떻게 표현하든 난 소수자였고 낳고 기르신 부모님마저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오랜 기간 나조차도 자신을 의심하며 상황을 정당화하고 있었구나- 몇 달 전 더 이상 나의 모습을 설득하려 애쓰지 않겠다는 포부를 담은 글을 썼었는데 다 잊고 살았다.
“한강”이라는 작가를 처음 만나고 지난 날들이 꼬박 십 년이다. 작가를 몰랐던 날들은 그보다 조금 길지만 이내 작가를 알게 된 후의 시간들이 더 쌓이겠지. 팔 년 전 내가 작가의 책, <채식주의자>를 안고 빗 속을 뛰었던 건 주인공을 내 안에 품고 싶은 마음이었을까? 내 마음도 모르는 내가 작가의 마음을 알리 없지만, 작가의 글은 왜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