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을 닫고 봄을 펼쳐낸 집
지난 여름의 나는 혼자 지낼 집을 구하고 있었다. 본가와 가까운 직장을 두고도 오히려 더 멀리 멀리 도망가고 싶었다. 새 직장에 적응하는 한 켠, 다른 켠에서 나는 한강의 북쪽 동네를 인터넷 지도로 훑고 새 터를 찾는 것에 혈안이었다. 한강 북위 동네를 보는 건 여러 이유가 있었는데, 그저 강남이 지겨웠고, 어릴 적 “시내 나가자”하는 엄마의 말에 손을 잡고 나섰던 길들이 그리웠다. 애인 직장 발령지와 가깝기도 했고 말이다.
황학동 주방거리 근처의 보증금 500짜리 매물을 보러갔던 날, 함께 간 애인은 내가 바라는 게 무엇이냐고 물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난 내가 자유로울 수 있는 적당히 큰 공간을 원했고 애인은 좁더라도 깨끗한 신축을 바랐다. 우리가 익년 결혼을 앞두고 있었기에 애인의 의견 수렴도 중요했지만 도망치기에 급급했던 난 대부분을 내게 일임한 애인을 등에 업고 성북천 앞의 집을 얻었고, 회사 1인 기숙사가 나오지 않아 여러 집을 오가며 지내던 애인은 얼결에 나와 생활을 같이하게 되었다.
이사하고난 첫 밤이었던가. 침대와 맞대어진 벽에 다리를 기대고 누워 이야기 나누던 중, 애인은 처음으로 우리 사이의 갈등을 겪었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나를 이해해보려 애쓰다 실패하고 자신의 마음이 무너질 때가 잦아져도, 너무 외로워보이는 나를 외면할 수 없었다고도 했다. 그날도 난 눈물을 흘렸던가? 아마 그랬을 거다. 나쁜 말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난 애인과 마음을 나눌 수록 부쩍 눈물을 흘리는 날이 많아졌다. 보다 감정을 편안히 표현할 수 있는 상대를 만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애인과 나는 금새 새 집에 적응해갔던 것 같다. 내 나이 뻘 건물에서 반짝이는 거라곤 찾을 수 없어도 그 안의 우리들은 분명 반짝였다. 짐을 옮기고 늘리며 채우고 친구들을 초대하여 맛있는 음식들도 대접했다. 그렇게 여름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무화과를 잔뜩 씻으며 가을을 맞이하고 밤을 삶으며 겨울을 보냈다. 그리고 드디어 봄이 올 즈음이 되니 괜히 초조해지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이젠 정말 미뤄둔 시작의 끄트머리였다. 그리고 난 도망치듯 집을 얻었던 것처럼 성급하게 집을 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