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위해 시간과 정성을 들이는 일
어느 날, 친구에게 인터뷰 부탁을 받은 적이 있다. 아무것도 아닌 나를 인터뷰한다는 게 조금은 신기하기도,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친구와 대화를 이어가다 보니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 있었다. 내가 전혀 눈치채지 못한 부분을 친구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오늘 말씀하시는 중간중간 돌봄이라는 키워드가 나오는 것 같은데”
그제야 알아차렸다. 나에게 사랑은 돌봄이고 사람을 챙기는 일은 너무나 중요했다. 어떻게 보면 나의 어린 시절이 그렇게 작용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돌봄의 공백을 스스로 채워나가야 했으니.
지금은 다른 말로 바뀌었다고 들은 것 같은데 내가 학생 때는 ‘녹색 어머니회’라는 게 있었다. 어머니들이 돌아가며 교통 지도를 서시는 일이었다. 가끔 할머니가 서시는 날도 있었지만 우리 집엔 아무도 그럴 사람이 없었다. 엄마도 할머니도 모두 내 곁을 떠나간 지 몇 년이 흐른 후였다.
나는 친구들과 친하게 지냈다. 녹색 어머니회 회장 자리를 맡고 계신 친구의 어머니께서 나의 사정을 아실 수 있도록. 친구의 어머니는 그래도 인정이 있으신 분이라 내게 먼저 그러한 의도를 전달하셨던 것 같다. “채리는 녹색 어머니 안 서도 돼. 아줌마가 대신 설 거니까 신경 쓰지 마”
그때는 그 말이 참 감사했지만 한편으로는 조금 부끄러웠다. 시간이 흘러 나는 나이를 먹고 부끄러움도 점차 사라졌다. 혼자서 나와 동생을 키우는 아빠를 불쌍하게 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따가웠을지언정 부끄럽진 않았다.
우리는 누군가 우리를 돌보아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학원이란 곳에 맡겨졌다. 동생도 나이가 어느 정도 차서 나와 같은 영어학원을 다니게 되었을 때, 그날의 기억이 떠오른다.
동생이 엄마에 대한 얘기를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엄마가 세상을 떠났다고도 했다고. 하지만 그건 사실이고 우리가 사는 현실이었다.
학원 원장님은 나를 따로 불러내어 앞에 앉혀두고는 “부재”라는 단어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 꺼내셨다. 나는 멋쩍어 어색하게 웃는데 원장님은 이따금씩 눈물을 보이셨다. 하지만 왜?
사실 맏이인 나에게도 엄마나 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많이 남아있지 않다. 전에 어디에서 들은 적이 있는데 우리의 뇌가 알아서 안 좋은 일들을 지워버리는 거라고 했다. 그 말이 맞는 건지 파편처럼 남아있는 것들을 빼면 내 가장 오래된 기억은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부터 시작한다.
알림장이나 사진 같은 것들로 맞춰가는 기억들. 맞춤법도 잘 모를 때에 삐뚤빼뚤한 글씨로 적어둔 일기장을 들춰보았다. 일기장 속 아이는 자신이 왜 어른들로부터 ‘의젓하다’는 얘기를 듣는지 궁금했다. 의젓하다는 건 뭘까, 가족을 두 번이나 잃고도 씩씩한 모습? 그 누가 챙겨주지 않아도 스스로 챙겨가는 준비물? 학교에서 손바닥을 맞고도 집에선 아무말도 하지 않는 무거운 입?
글쎄, 다른 건 몰라도 그 어린 아이에겐 이런 마음이 생겼던 것 같다. ‘동생은 나처럼 키우지 말아야지’
아이는 동생의 준비물을 사주고, 친구들과 노는 데에 데리고 나가고, 학원 원장님의 출처를 알고 싶지 않은 눈물을 대신 보았다. 그러면서 컸다. 자라났다. 아직 어른은 아닌 성인이 되었다.
“저에게 요리는 누군가를 위해서 시간을 들이고 정성을 들여서 하는 일”
넷플릭스에 새로운 프로그램이 나왔다고 해서 재생 버튼을 눌렀다. 셰프 최강록과 (아마) 예능인 문상훈이 함께 요리하고 손님에게 대접하는 <주관식당>이라는 방송이었다. 1화 거의 초반부에 셰프 최강록은 저런 문장을 꺼내 읽는다.
공교롭게도 나는 그때 나의 연인의 생일 밥상을 준비하던 참이었다. 잡채와 진미채는 근처 반찬 가게에서 사온 거였지만 미역국과 갈비찜은 직접 만들 거였다. 그리 크지 않은 부엌에서 화구를 두세 개씩 써가며 홀로 씨름했다.
내게 믿을 수 있는 건 이름 모를 사람이 쓴 블로그의 글 뿐. 미역을 불리고, 고기를 데치고, 불순물을 제거하고, 양념을 만들었다. 그러면서 삶아지길 기다리는 시간에 저 <주관식당>이라는 프로그램을 발견한 것이다.
원가족을 떠나 자취를 하게 되면서 요리하는 일이 늘었다. -여자라고 요리만 시킬까 봐 라면도 잘 안 끓이던 시절도 있었건만- 제육볶음, 소고기뭇국, 닭갈비… 내가 할 수 있는 메뉴의 수는 점점 늘어갔다.
갈비찜을 삶아두고 세탁이 다 된 빨래를 널으며 강록의 말을 되새겼다. 그러다 당장 녹음기를 켜고 그때의 생각을 기록하여, 빨랫감 터는 소리와 함께 이 글의 초안을 완성했다.
“누군가를 위해 시간과 정성을 들이는 일” 비단 누군가 뿐만 아니라 나 자신, 스스로를 위해 그런 일을 하고 있다고 느꼈다. -이날은 연인을 위한 거였지만- 밥을 차리고, 빨래를 널고, 분리수거를 하는 일… 그렇게 내가 사는 곳을 가꾸고 잘 살려고 해보는 일, 그게 나의 ‘돌봄’, ‘돌보는 일’이다.
추신, 거창한 첫 인사에 쑥스러운 마음이 든다. 그렇게 나의 돌봄과 사랑과 사람이 되어 주신 것에 감사를 드린다.